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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31일 수요일

사원 SW개발자의 고군분투 적응기

오늘은 SDS에서의 사원 시절 생활을 적어보려고 한다.

방법론팀에 배정받은 나는 자연스럽게 엔지니어링 업무가 짙었던 형상관리 툴 관련 업무를 맡게 되었다. 당시에 나와 함께 배정받은 동기녀석도 같은 업무 였는데, 나는 주로 SI(System Integration)쪽을 맡았고, 그 친구는 SM(System Maintenance) 쪽을 맡았다. 군대도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데, 이는 향후 둘의 커리어의 방향과 직결되는 것이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았을 땐, 난 성향 자체가 SI 사업이 맞았고, 처음에는 케어(?)를 잘 받지 못 했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커리어를 쌓아 갈 수 있었다.

우리 방법론이 사용하던 형상관리 툴은 Serena사의 Dimensions 라는 제품이였다. 아마, 일반 개발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지 않을 까 싶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CVS, PVCS등이 주로 쓰여지고 있었고, Subversion도 사용이 많이 되고 있던 시점이였다. 헌데 듣보잡 디멘전이라니.. 해당 툴은 다른 소스 형상관리 툴과는 다르게, 이슈 관리/트래킹이 한 제품으로 되는 솔루션이였다. 아무래도, 방법론과 함께 엮다 보니, 소스 리비전과 이슈가 관계를 맺어야 하기 때문에 이 제품이 선택 된 걸로 생각된다. 하지만, 해당 기능은 짧은 기간내에 수많은 리비전이 만들어지고 커밋/롤백이 난무한 SI 플젝에서는 그닥 어울리는 제품이 아니였다. 하지만, SM기반의 유지보수가 주인 현장에서는 자그마한 커밋도 쉽게 허용이 되지 않아야 하고,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두는 경향이 짙기 때문에, 현재도 사내포탈과 연계하여 커스터마이징 한 버전이 사용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난 주로 대내외 SI 프로젝트를 돌아디나면서, 형상관리 툴을 세팅해주고, 개발자들을 교육시키는 일을 주로 했었다. 먼넘의 툴이 설치가 이리도 복잡하던지, 메타 데이터를 오라클 디비에 넣고, 라이센스 서버, 웹 서버 등을 따로 다 설치하고, 버전 업그레이드 되면 동일 작업을 반복하고.. 하여간 손 가는 작업이 무척 많았다. 그리고, Pessimistic Locking 정책에 따라, 소스를 수정하기 위해서 반드시 Check Out을 하여 Lock을 확보해야만 사용 가능 한것이 default 설정이였고, 많은 개발자들이 이런 부분들을 불편해 했다. 솔직히, 형상관리 툴을 교육 하는 것 자체에 대해 무슨 필요성이 있는 지 모르겠다는 개발자들이 대부분이였지만, 일반 형상관리 툴과는 다르게, 사용법이 복잡했고, 이슈까지 연계까 되다보니, 본의아니게 욕(?)을 많이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프로젝트 상주기간은 case by case 였었다. 2~3일이면 끝나는 곳도 있었고, 길면 3개월씩 상주하기도 하였다. 행자부, 교육부, 법무부 등의 공공 프로젝트, 금융권 증권/보험사 프로젝트, 삼성 그룹사 SI 프로젝트, 군 프로젝트 등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돌아다니기 좋아했던 나에게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내가 가진 기술을 알리는 작업이 즐겁기는 하였으나, 개발에 항상 목 말라 했던 나는 항상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곤 하였다. 이런 나의 솔직한 마음을 선배 및 팀장님에게 기회가 될 때 마다 이야기 하였고, 개발 거리를 찾던 중, 형상관리 솔루션과 연계하여 자그마한 자체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컨셉은 간단했다. 그 당시의 개발 프로세스의 대한 상태를 그래프화하여 현실성 있는 개발 진척도를 가시화하고, 이를 플젝 전체에 공유하여 동기부여 수단으로 사용하고, 투명화하겠다는 개념이였다. 가령, 개발자가 Task를 할당 받으면 상태는 '개발중' 이고, 개발이 완료되면 소스 최종 커밋 이후 연결되어 있는 Task의 상태를 'PL검토중'으로 변경하면서 담당 PL에게 전달한다. PL은 단위테스트 완료 유무 및 자체 테스트를 통해 개발이 완료되었다고 판단이 되면 '개발완료' 로 변경하고, 그렇지 않다면 '개발중'으로 변경하여 다시 개발자에게 전달한다. 이런 과정을 실시간으로 시각화 하는 개념으로 보면 되겠다.

소스 관리 및 이슈(태스크) 관리가 디멘전 하나로 관리가 되고 있었고, 모든 메타 정보는 오라클 DB에 들어 있었으며, 친절하게도 데이터 핸들링이 가능한 Api가 있었으나, 무척 불편하고 배우기도 어려웠기에, DB의 테이블 구조를 일일히 그려나가면서 개발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이런 식의 개발은 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구현할 수 있었다. 단순 JSP형태로 개발한 걸로 기억한다. 껍대기는 어디서 템플릿화 되어 있는 걸 가져왔었고, WAS는 Tomcat.. 크리티컬한 시스템은 아니였기 때문에, HA구성까지는 할 필요가 없었다. 헌데, 만드는 것 까지는 쉬었는데, 해당 화면을 보는 주요 의사 결정권자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 탈이였다. 처음에는 내 소속 PL의 요청에 따라 개발을 완료하고 나니, TM(Test Manager)가 다른 의견을 보여주고, 그래서 변경하면 PM(Project Manager)가 한 마디 하고, 나중에 프로젝트에 공개하니, 각 모듈 담당 PL(Project Leader)들이 또 다른 요구사항을 내기 시작하고.. 그 당시 한 달 정도면 개발 및 테스트, 배포까지 마무리할 생각으로 투입되었던 여의도  모 증권사 차세대 프로젝트에서 3개월 이상 머물렀던 걸로 기억 한다. 그리 달갑지 않은 기억이였지만, 요구공학에 대한 필요성과 정제 작업, 데이터 수집 및 효과적인 시각화 등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해주었던 플젝이였다.

어느 정도 형상관리쪽이 익숙해지니 다른 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당시 방법론을 지원하는 툴셋을 통합개발플랫폼 이라고 칭하였고, 결국 나의 업무는 '통합개발플랫폼 개선 및 확산'으로 2년 정도 수행하였다. 형상관리툴에 더해서, EA나 ERWin과 같은 설계 툴, Eclipse 같은 개발IDE(Integrated Development Environment), CI(Continuous Integration)을 위한 Ant, Maven, Hudson 등.. 개발을 위해서 필요한 대부분의 모든 툴에 대해서 경험을 하게 되었고, 서로 연계 하는 작업에도 동참하게 되었다. 정기적으로 진행했던 방법론 교육과정의 실습 환경 구성을 하기도 하였고, 후반에는 전체 툴에 대한 엔지니어링 및 기술 지원 등을 수행하였었다. 이는 SA로 성장하게 되는 좋은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Framework 개발을 하고 싶었던 나에게, 솔루션을 배워서 하는 것 보다는 직접 개발에 뛰어 들어서, 대형 SI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던 욕구가 무척 강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2년차때 소속 팀장이 이러한 내 성향을 잘 이해하고 있던 상황이였었다. 이게 개인 평가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부서를 옮기는 데에는 기여를 하게 된다.

그 당시 회사에서는 엔터프라이즈급 상용 비즈니스 Framework를 개발 하겠다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었고, TFT가 추진되고 있었다. 1년차때 알던 선배 한분이 해당 TFT에 있었고, 우연히 2년차 여름쯤에 진행되었던, 각 센터/TFT 추진현황 공유시 해당 TFT에서 내부인력 대상으로 인력을 모집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내부인력이 대상인 이유는 보안상 이슈 및 내부 역량 강화가 원인이였을 것으로 본다. 그 날, 발표를 마친 선배를 지체없이 쫓아가 농담 한 마디 건넸다.

"선배님, TFT가서 저 불러주신다고 하시더니, 연락이 없으시네요? ㅋ. 잘 지내시죠?"

선배 왈, "오, 인석씨. 오랜만이에요. 안 그래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시간 괜찮아요?"

갑자기 하늘에서 종이 울리는 기분이였다. 난, 선배와 커피숍에서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고, 선배는 같은 본부에 옆 센터에 있던 나를 후보로 선정해주었다. 이는 비공식적으로 TFT장에게 올라갔으나, 결국 공식적으로 내 이름 석자가 내부인력 충원 대상 후보 인력으로 거론되기 시작했고, 내 소속 팀장이 동의 해주면서 난 팀을 옮기게 되었다. 

실은, 입사 1,2년차 된 사원이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재미가 없으니, 딴 일을 시켜달라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겠다. 보통, 본인들이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를때가 많고, 조직적으로 보았을 때는 개인 평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원들보다 2년이라는 개발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의견 개진을 주저 없이 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부서로 전배 갈 수 있었다. 물론, SDS에는 본인이 원한다면 TO가 있는 부서로 팀장 협의 없이 일단 시스템을 통해 신청하여 옮길 수 있는 훌륭한 제도가 있지만, 난 그런 방식은 원하지 않았다. 회사 입장에서 보았을 때, 개인이 가장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는 일에 배치를 하는 것이 회사에서도, 개인에게도 득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많은 인력들이 입사 초년에 적응에 실패하고 회사를 떠난다. 힘든 것도 있을 것이고, 생각 했던 것과 너무나도 다른일들이 본인에게 닥치기 때문인 듯 하다. 우리나라 대기업 문화 상, 신입사원으로 뽑힌 인력이 명확히 무슨일을 해야 될지를 입사 전 부터 제시하고 지켜나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갓 졸업한 대학생들 역시, 본인들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아니면 최소한 본인 잘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한국식 교육이 만든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걸 반대로 해석한다면,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은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회사에 잘 맞는 사람을 뽑는 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에게 많은 돈을 투자하여 키운 다는 것, 그리고 입사 이후에 본인에게 맞는 일이 주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지 많다는 것 등은 장점으로 적용 될 수 있지 않을 까 싶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그렇게도 원하던 프레임워크 팀으로 이동하여, 진행했던 두 개의 대형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 해보고자 한다. 지금 생각 해도, 증말 재미있던 플젝들이다.

To be continued..

2014년 12월 26일 금요일

[번역] Half a decade with Go - 고랭 5주년을 맞이하여..

고랭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 달에 본 글이 기억 나서 번역 해 봅니다. 중간 중간에 링크들이 고랭의 설계 사상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네요..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원문 링크 : http://blog.golang.org/5years



Go와 함께 한 5년

10 November 2014
5년전, 우리는 Go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습니다. 첫번째 공식 릴리즈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 마치 어제 같군요: 우리의 웹사이트(website)는  사랑스러운 노란 빛깔이였고, 우리는 Go를 "시스템 언어"라 불렀으며, 여러분은 반드시 세미콜론으로 문장의 끝을 알려야 했고, 빌드를 하기 위해서 Makefiles를 만들어야만 했었습니다. 우리는 Go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몰랐습니다. 사람들과 우리의 비전과 목표를 공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Go가 쓸만하다고 할까? 
출시하는 순간, 엄청난 기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구글은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해오고 있었으며, 모두들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어 했습니다. 어떤 프로그래머들은 Go의 보수적인 기능 세트에 관심을 끊어 버리기도 했죠—처음 흘겨 보고서는 이렇게 얘기 했죠.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어"—하지만 더 작은 한 그룹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써의 니즈에 꼭 맞는 에코 시스템의 시작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 분들이 바로 Go 커뮤니티의 커널입니다.
Gopher illustration by Renee French
첫 릴리즈 이후, Go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목적과 설계 사상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게 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죠. Rob Pike 은 2012년에 작성한 에세이 (Go at Google: Language Design in the Service of Software Engineering) 에서 이를 유창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그의 블로그(Less is exponentially more)에서도 조금더 개인적인 의견을 개진해 주었습니다. Andrew Gerrand 가 작성한 Code that grows with grace (slides) 와 Go for Gophers (slides) 는 조금 더 깊이 그리고 기술적으로 Go의 설계 철학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적은 인원은 점점 많아집니다. 프로젝트의 터닝 포인트는 안정적인 언어와 개발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표준 라이브러리를 제공하였던, 2012년 3월의 Go 1 릴리즈 때 입니다. 2014까지 프로젝트는 수백명의 핵심 조력자(contributor)들을 가지게 되었으며, 에코시스템은 수 천명의 개발자들이 관리하고 있는 셀 수 없는 라이브러리와 툴들(libraries and tools)을 지니게 되었으며, 보다 커진 커뮤니티는 "고퍼스(gophers)"라 불리오는 열정적인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최근 지표에 의하면, Go 커뮤니티는 우리의 생각보다 더 빨리 커지고 있습니다.
어디서 고퍼스들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전 세계적으로 열리고 있는 다양한 Go 이벤트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올해에는 몇몇의 헌신적인 Go 컨퍼런스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 덴버와 파리에서 첫 회를 맞이한 GopherCon 와 dotGo 컨퍼런스, Go DevRoom at FOSDEM 와 도쿄에서 연 2회 열리는 GoCon 컨퍼런스 등이 있습니다. 각 이벤트에는 전 세계의 고퍼스들이 열렬하게 Go 프로젝트들을 소개해주었습니다. Go 팀에게는 수 많은 개발자들에게 우리의 비전과 흥분을 공유 할 수 있었기에,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일이였습니다.
1,200명이 넘는 고퍼스들이 덴버에서의 GopherCon 과 파리에서의 dotGo에 참석하였습니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각 도시마다 수 십개의 커뮤니티(Go User Groups)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직 여러분이 계신 곳의 로컬 그룹을 방문하지 않았다면, 방문해보세요. 만약에 없다면, 여러분이 시작해보는 것(start one)은 어떨까요?
오늘날, Go는 클라우드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Go는 산업이 클라우드 컴퓨팅을 향해 구조를 변경하는 것고 발 맞추어 안착했고, 이러한 움직임의 주요한 부분을 지켜 보는 것은 무척 흥분되는 일이였입니다. Go의 단순함, 효율성, 내장된 동시성 프리미티브(built-in concurrency primitives), 그리고 모던 표준 라이브러리들은 Go가 클라우드 소프트웨어와 궁합이 잘 맞게 해줍니다(어찌됐든, Go는 이걸 위해 설계되었죠). Docker 와 Kubernetes 와 같은 특정 오픈소스 클라우드 프로젝트는 Go로 작성되어 오고 있으며, Google, CloudFlare, Canonical, Digital Ocean, GitHub, Heroku, and Microsoft 와 같은 인프라스트럭처 회사들은 지금 Go를 사용하여 주요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는 2015년이 Go의 가장 최고의 해가 되리라 생각됩니다.
Go 1.4—추가 기능 및 수정 사항(new features and fixes)—는 새로운 low-latency 가비지 콜렉터를 위한 기초작업이 수반되었으며, 모바일 장치에서 돌아가는 Go를 지원합니다. '14년 12월 1일에 릴리즈 됩니다. '15년 1월 1일, 넓은 범위의 어플리케이션을 위한 Go 1.5에는 새로운 GC
를 사용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어디에서 사람들이 Go 1.5를 받아 갈지, 기다릴 수가 없군요.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더욱 훌륭한 이벤트들이 개최 됩니다. GothamGo (뉴욕, '15년 11월),
Go DevRoom at FOSDEM(브뤼셀, '15년 1/31~2/1; get involved!), GopherCon India(방갈로, '15 2/19~21), 원조 GopherCon (덴버, '15년 7월), dotGo (파리, '15년 11월).
Go팀은 모든 고퍼스 여러분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이제 다음 5년을 함께 하시죠.
Go 5주년을 축하하기 위하여, 다음달('14년 12월)에  Gopher Academy 에서 유명한 Go 사용자들의 글들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Go의 행보를 확인 하고 싶다면, 블로그(their blog)를 방문해주세요!
By Andrew Gerrand

2014년 12월 25일 목요일

사회 초년생 SW개발자의 1차 방황기 - 회사 옮기기(HIT->SDS)

사회생활 시작한 이례, 겨울 휴가를 보내는 건 처음인 듯 하다. 이를 기념하여, 지난 글(풋내기 개발자의 대기업 취업 수기) 에 이어, 첫 입사 이후 1년 동안의 행적을 돌이켜 본다. 

현대정보기술(HIT)에 입사하여 처음 배정받았던 부서는 해외금융개발팀(명확하지는 않은 듯..)이였다. 중간에 이름이 한번 바뀌었고, 워낙 짧은 기간동안 근무를 해서 부서명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입사 할 당시 "현대" 그룹이 여러 그룹으로 쪼개지면서, 회사가 많이 어려워졌고, 현대 그룹 소속도 아닌 걸 알고 있었지만, 한때 가장 잘 나가던 규모있는 SI업체 였고, 주변에 입사 지원했던 동기들도 모두 능력이 훌륭했기 때문에, 또한, 베트남에 나갈 수 있다는 기대가 컸었던 걸로 기억 한다.

처음 담당했던 업무는 베트남 농업은행 시스템 유지보수 였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농협은행과 같다고 보면 된다. 회사에 들어가면 최신 기술들을 써 볼 수 있겠지.. 하는 기대와는 정 다르게, 해당 시스템은 파워빌더6 버전에 그리 유명하지 않은 DB 기반으로 구축되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곧, 차세대에 투입될 예정이라며, 기존 시스템을 조금씩 보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업무가 너무 없었다. 프로젝트도 국가 기반 사업이라, 국가에 돈이 있어야 되는데, 국제 기금을 빌려서 진행하는 형태라, 언제 시작 할 지도 불투명한 상태였다. 혈기왕성 했던 나는, 열심히 현장에서 굴러 내실을 다지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무척 불안해 했었다. "이래서야 성장 할 수 있을 까?" 이런 질문이 계속 머리속을 맴돌고 있었다. 게다가, 파워빌더라니.. 마음을 붙이기 어려웠다.

그 당시 함께 입사하였던 친구 중 같은 부서에 굉장히 일을 잘 하던 친구가 있었다. 나보다 한 학번 많지만 나이는 같았고, 군대는 방위산업체에서 산업요원으로 근무하면서 해결한 친구였다. 보통, 이런 경력을 가진 친구들은 다른 사람들 삽질하고 있을 때, 실제 필드에서 험하게(?) 구르기 때문에, 대부분 개발에 있어서는 다른 인력보다 무시 못하는 내공이 있기 마련이다. 나와도 무척 얘기가 잘 통했고, 나보다 훨씬 세상 물정에 대하 밝았다.

하루는 나에게 다가와 솔기한 이야기를 전한다.
"SDS에서 신입사원 뽑드라..봤냐?"

삼성맨이 되고 싶었으나, 한번 미끄러져본 경험이 있었고, 그 당시만 해도, 막 졸업한 사람만 뽑던 터라, 나는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나는 대상에 못 들어갈껄? 졸업한지 몇 년 지났는디?"

하지만 역시, 이 친구는 그냥 나에게 해 본 소리가 아니였다.
"너, 올해 전역했자나. 입사 공고 보면, 올해 혹은 내년 졸업 예정자, 아니면 올해 군 전역자던데?"

난 바로 채용공고를 확인 했고, 두말도 없이 입사 지원을 하였다.
지난번에는 삼성전자를 썼다가 떨어졌고, 솔직히 미련도 없었기 때문에, 전문 SI 업체에서 일하고 싶었던 마음을 유지하면서, 삼성SDS 에 입사 지원을 하였다.

SSAT를 잘 통과하고 면접 준비를 하기 위해, 아주 잠시 자발적인 스터디 그룹에 참여 했었다. 하지만, 개발경험도 있고, 회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던 나에게, 일반 대졸 예정자 학생들이 진행하던 스터디는 너무나 유치했었다. 물론, 어떤 식으로 면접이 진행 된 다는 것에는 도움이 되었으나, 그 정도는 웹사이트에서도 얻을 수 있는 정보였었던 듯.. 오히려 혼자 조용한 방 안에 앉아서 예상되는 면접 질문들을 유추해보고, 답변하는 모습을 녹화해 놓고 다시 돌려 보면서, 말하는 모습이나 자세, 억양, 눈빛 등을 연습해보고 마음속으로 계속 그려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 까 싶다.

면접은 4개 면접으로 진행 되었었다. 인성 면접, 그룹 면접, 영어 면접, PT 면접 이였는데, 순서는 사람들마다 조금씩 달랐던 듯.. 면접 질문들이 모두 기억 나진 않지만.. 인성 면접에서 중요한 건 솔직함 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난 이미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직장생활 관련된 질문도 꽤 있었다. 왜 옮기려고 하는지, 하루 일상 생활에 대해서 설명 해보라고 하던지, 군대에서 SW개발병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업무를 하는 사람이 군대 안에 있으면, 우리 같은 회사가 군대에서 일하기 어렵지 않겠냐 라던지.. 이런 식의 내용이였다. 그룹 면접에서는 주제를 하나 주고, 찬반을 양쪽으로 나눠서 팀을 가른 다음에 집단 토론 하는 형태로 진행 했었다. 정답을 얘기 하기 보다는 어떻게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눠 가는지, 이끌어 가는지 등을 주로 보는 듯.. 가장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답을 할 때 그에 대한 지지 혹은 반대 의견을 개진해 나가면 되었던 듯.. 영어 면접은 꼬리에 꼬리를 이어가는 식의 현지인의 질문, 가령.. 여행을 좋아 하냐, 어디로 가느냐, 거기 가면 머하냐 이런 식으로 물어보면 짧게 답을 했던 듯.. 기억 나는 것 중 하나가.. 서해 뻘에 가서 키조개를 캐는 걸 설명하려다가 낭패를..ㅡㅡㅋ 머 여튼.. 그리고 종이에 질문이 하나 적혀 있었다. 친구가 니 카페트를 더렵혔는데, 어떻게 할거냐.. 머 이런식의 질문에 대해 의견을 얘기 하는 거였다. 나야 머.. I don't care.. 식으로 넘어가면서, 친군데 머 어떻냐고 답을 했었다. 마지막 PT 질문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A, B, C사에 상용 데이터베이스 a, b, c가 있는데, 어떤 시스템을 구축하는 PM이라면 무슨 상용 데이터베이스를 선택하겠느냐 라는 것이였다. a는 오라클, b는 이름은 알려져 있지만 많이 사용하지는 않는 것.. 그리고 c는 SDS자체 솔루션이였던 듯..ㅡㅡㅋ 시스템의 크기가 그리 크기 않았고, 내 생각에는 오라클을 쓰는 것 보다는 그나마 인지도가 있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b 제품을 쓰는 것이 좋겠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쓸 필요가 있겠느냐 라는 식으로 답을 했다.. 면접관들은 별 질문이 없었고, 끄덕 였던 듯..ㅋ

솔직히 면접 준비는 많이 하지 않았지만, 다른 입사지원자들과는 다르게 2년 반 정도의 개발 경력이 있었고, 적당히 화려한(?) 말빨 덕분에 어렵지 않게 통과 하였다. 해서, 2006년 12월, 공식적으로 삼성SDS에 입사하면서, 그렇게도 그리던 삼성맨이 되었다.

삼성 입사 확정 메일을 열었을 때의 기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무언가 해냈다는 느낌, 그렇게도 바라던 꿈을 이루었다는 일종의 성취감, 그리고 가족들의 축하 등 잊을 수 없었던 순간이였다.

삼성의 초반 교육은 무척 빡셌다. 입사 4주전부터 SDS인의 소양(개발능력)을 키우가 위한 교육이 진행 되고, 입사 후 4주간은 그룹 교육을 타 그룹사원들과 받는다. 이후에 2주간 다시 SDS 입문 교육을 받았다. 교육 내용을 자세히 얘기하는 건, 예의가 아닌 듯 해서 skip 하겠음.. 대신, 입사 4주전부터 받았던 교육에서 만났던 반 동기들은 지금도 매년 송년회를 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고 있고, 더할 나위 없는 인생의 동반자 들이다. 같은 회사에 있건 없건..

교육이 끝나고 가장 관심이 많은 부분은 바로 부서 배치가 아닐까 싶다. 내가 입사할 당시에는 1~3지망 까지 원하는 부서를 명시하고, 교육 중 받은 평가 점수에 따라, 부서 배치를 받게 되었다. 그 당시에 SI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인력을 수백명 뽑았는데, 가장 빡센 부서라 소문이 돌아서 어떤 여사우는 눈물까지 보이는 상황이 연출되기도..ㅡㅡㅋ 나는 입사할 때 부터 프레임워크에 관심이 많았다. 그냥 맨땅에서 굴러보니 프레임워크에 대한 중요성도 알고 있었고, 훨씬 그 분야가 재미있었다. 해서 현재는 없어졌지만 생산성 혁신 본부의 IT Engineering 센터에 지원하였다. 그 당시에 TO가 3명이였는데, 부서가 자산팀, 프레임워크팀, 방법론팀 크게 3개 여서 한팀에 한명씩 뽑는 걸로 기대하고 지원해서 내부 면접을 보게 되었다.(대부분의 부서는 면접 과정이 없다.)

하지만, 면접 당일날 해당 TO는 방법론팀에게 할당 된 3개의 TO 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자산팀은 내가 입사하기 전에 인력을 할당 받았고, 정작 가고 싶었던 프레임워크 팀은 추후에 뽑을 예정이였다. 순간 머리속이 하얘졌다. 방법론? 생소했다. 방법론이 먼지, 가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타 본부로 가는 것 보다는 옆 팀에라도 있으면 나중에 프레임워크쪽으로 갈 수 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면접시, 프레임워크 관련된 내용만 준비했던 것에 방법론 관련 내용을 살짝 추가하여 진행했었다.

물론 내용은 엉망이였겠지만, 그 당시 면접관이셨던 3분은 모두 만족해 하는 분위기였고, 특히 군대에서 표창을 받은 내용이 인상 깊었던 모양이였다. 해서 나는 방법론팀으로 조인하게 된다. 이때, TO가 3명이였지만, 면접자중에 뽑을 만한 사람이 많지 않아서, 2명만 뽑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센터에는 신입사원을 바로 한 해 전 부터 뽑기 시작했고, 전년도에도 2명만 뽑혔다고 한다. 그 정도로 사원의 비중이 적은 곳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듯.. 생산성 혁신을 신입사원들이 어떻게 할 수 있을 까..ㅋ 하지만 허드렛일도 많다보니 필요해 보이기도 했다.

해서 난 방법론의 신입사원이 되었고, 처음으로 맡았던 일은 방법론 기반하에 만들어진 통합개발플랫폼의 형상관리 솔루션 적용 지원 업무를 맡게 되었고, 곧 전체 통합개발플랫폼 확산 관련 업무를 하게 된다. SDS에서의 생활은 다음 포스트에서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 나름 많이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된 듯.. 이런 과정을 통해 얻은 것은.. 본인이 무얼 하고 싶은지 그리고 멀 할 수 있는 지 고민하여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솔직함과 본인을 어필 할 수 있는 능력이 꼭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꿈을 계속 쫓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라는 점.. 등 인듯 하다.

그럼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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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1일 일요일

Distributed Algorithms in NoSQL Databases

https://highlyscalable.wordpress.com/2012/09/18/distributed-algorithms-in-nosql-databases/


풋내기 SW개발자의 대기업 취업 수기

증말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을 쓴다. 꾸준히 블로깅 하는 것도 쉽지 않은 듯 하다.
요즘 날씨도 음청 춥고, 연말을 맞이하면서 올해를 돌아보다가 문득, 스스로 했던 약속들을 기억해내고 다시 들어왔다.

오늘 이야기는 군대를 졸업하면서 동시에 취업을 했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감회가 무척 새롭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대한 나는 군대 전역을 앞두고, 다들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병사들에 비해, 바로 실업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무척 불안했던 걸로 기억한다. 밤에 잠도 잘 못 잔듯..

전역을 한 4~5개월 정도 앞두고, 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부터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습관이 든 듯 하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는 여러가지 옵션이 있었다. 학벌 세탁을 하기 위해, 좋은(?) 학교로 학사편입을 할 까, 아니면 석사에 진학하여 가방끈을 더 길게 만들어서 경쟁력을 높여 볼까, 아니면 지금 상태에서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 들어 갈까..

A4용지에 여러 옵션들을 적어 놓고 선을 그은 다음, 장/단점을 비교해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학사편입을 하게 되면 학벌은 올라가겠지만, 졸업 이후의 나이 때문에 오히려  취업하기 힘들어 보였다. 석사는 맘만 먹으면 진학 할 수 도 있었겠지만, 솔직히 하고 싶은 공부/연구가 뚜렷이 없었다. 그리고 경제적인 여유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해서, 난 취업 전선에 뛰어 드는 걸로 결정하고, 회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두 개 있었다. 학점과 영어점수였다. 대학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졸업시에 최소 3점대는 넘겨야 된다는 이야기에 계절학기를 3번이나 들어가면서, 3점 중반대를 겨우 만들었었던 것이 다행이였다. 영어 점수는 그때 당시 공대쪽은 토잌 680점대가 커트라인이였던 걸로 기억 한다.  아무 준비 하지 않고 봤던 토잌 점수는 너무 부끄러운 수준이였다. 기억도 안난다 몇 점이였는지.. 이후에 토잌 책 사서 2~3번 정독하고, 필사 하고, EBS로 감 잡고, 한 3개월동안 토잌만 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까지 그때 만큼 영어 공부만 했던, 그리고 할 수 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취침시간에 모포 뒤집어 쓰고, 조그마한 렌트키고 공부도 하고, 밤새 귀에 리스닝 테이브를 무한 반복으로 해 놓고 자고 그랬었다. 3개월뒤에 본 토잌 점수에서 커트라인을 훌쩍 넘기며, (그렇다고 점수가 그리 좋진 않았다..800점선이였던 듯..) 한 숨 돌리게 되었다.

이제 회사 얘기를 해 볼 까..

사실, 난 군대에 있을 때 삼성맨이 무척 되고 싶었다. 누군들 국내 제 1의 업체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을까.. 군대에 있을 때, 삼성 관련된 책들을 스스로 사보고, 즐겨 읽기도 하였다. 주변에도 어찌나 이야기를 했던지, 부대 사람들도 대부분 내가 삼성맨이 되고 싶어하는 걸 알고 있었다.

해서 여러 계열사 중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내가, SW개발병 경험을 가지고 입사가 가능했던 회사를 골랐다. 바로 삼성전자와 삼성SDS.. 두 회사 중에서 무척 고민했었던 걸로 기억했다.  SI업을 해보고 싶었던 나에게 삼성SDS가 당연한 선택이라 생각할 수 도 있었지만, 웬지 계열사 중에서도 가장 앞서 나가고 있었던 삼성전자 SW연구소(이름이 정확히 기억이 안난다.)에서 일하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때는 회사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던 것 같았다. 중복 지원도 불가해서 무작정 삼성전자에 입사 지원서를 냈었다.

그리고 삼성에만 목 매달수는 없는 노릇..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계열사들의 IT를 담당하는 SI업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여러 회사를 리스트업 했다. LG CNS, 현대정보기술(HIT), 아시아나IDT 등 이였다. 그리고 군 생활을 하면서 육군본부에서 만난 회사도 있었다. 그 중에 한창 유비쿼터스 시대로 RFID가 한창 거론될때 LG 히다찌라는 회사도 리스트에 넣었다.

그리고서는 자기소개서, 입사지원서를 쓰는 데 시간을 많이 들였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면 별로 매력적인 자소서는 아니였던 덧.. 하지만 신경 썼던 부분은 각사마다 자소서 형식, 길이가 모두 달라서, 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쓰려고 노력했던 걸로 기억 한다. 삼성은 자소서가 무척 짧았다. 말을 최대한 줄여서 핵심만 말하는 데 주력했다. LG는 겁나 길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머지 회사들은 기억이 잘 안난다..ㅡㅡㅋ 여튼 내용 자체가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

그리고는 입사 시험 및 면접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SSAT를 봤는데, 면접 까지 못 간 듯.. 헌데 지금 생각 해 보면 잘 된듯 하다. 그 이유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서류/시험까지 통과하고 면접까지 본 회사는 LG CNS(경력수시), LG 히다찌(신입수시), HIT(신입공채) 3개다. 나머지 회사들도 서류는 모두 통과 했지만, 입사 시험에서 미끄러진 듯 하다. 아시아나IDT 같은 경우는 한자 시험을 보면서 무척 괴로웠던 걸로 기억 한다.

여튼, LG CNS는 경력으로 면접을 봤는데, 군경력이였던 걸 몰랐던 듯..ㅡㅡㅋ 좀 어이 없어 했던 것 같다. LG 히다찌 같은 경우는 PT도 했었고, 분위기도 좋았다. LG히다찌는 준비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히다찌는 일본의 엄청나게 큰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난 잘 모르는 회사였고, LG 히다찌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었다. 그 당시, 인터넷 카페가 유행하던 시절이였는데, 웹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LG 히다찌 내부 인력들로 구성된 카페를 찾게 되었고, 시샵에게 메일을 한통 썼었다. 거기 입사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되냐고.. 결국 그 분이 인사팀에 연락해서 면접까지 무난하게 갔던 걸로 기억한다. PT도 재미있었다. 현재 RFID의 장단점을 분석해보고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멀 해야 겠는 지 피력해보라는 것이 과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쉽지 않았던 과제 같은데, 잘 준비해서 면접관들도 만족했었다. 마지막에 LG 마크를 띄우면서 확대하는 애교도 보여줬던 듯.. 허나 회사 분위기가 맘에 들지 않았다. 한 건물 한 층을 다 쓰고 있었는데, 높은 파티션 하나 없이 수십명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었다. 얼굴 들면 끝에서 끝이 다 보이는 그런 느낌..(최근에 LG 타 계열사를 방문했었는데 거기도 사무실 모양이 비슷했다.) 너무 답답했다. 마지막에 면접을 본 HIT는 수 년 만에 시행되는 신입공채 였다. 같이 면접을 봤던 사람들도 얘기를 해 보면, 보통 내기들이 아니였다. 그리고 면접은 몇 차례 진행 되었는데, 마지막 면접이 CEO와의 면접이였다. 인상 깊었던 부분이 영어로 자기소개를 시키고 모두 중간에 잘랐던 점.. 그리고 베트남 프로젝트에 투입시킬려고 하는데 갈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그럴려고 입사 지원 했습니다. 라고 했던 점이 기억 난다.

해외에도 관심이 많았던 나는 결국 HIT에 입사하게 된다. 마북동에 있던 현대 연수원에서 꽤 질 높은(?) 교육도 받고, 산속 꼭대기에 지진에 대비한 설계가 되어 있던 건물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HIT에서의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그 이유는 다음 편 글(HIT -> 삼성SDS)에서 이어 나가겠다.

내가 취업하던 시기도 그리 좋은 시기는 아니였으나, 요즘은 정말 너무 너무 취업하기 힘든 듯 하다. 하지만, 기업 역시도 제대로 된 사람을 구하지 못 하는 현상이 갈 수 록 심화되는 듯 하다. 대기업에 신업사원으로 입사하는 건,튼튼한 중견/중소기업에 입사하는 것 보다 더 쉬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뽑기 보다는 회사에 잘 어울리고 잘 배울 수 있는 사람을 뽑기 때문이다. 오히려, 뛰어난 기술은 있는 데, 이런 잣대에 어울리지 않아 입사 못 하는 사례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는 취업 준비를 하는 과정 자체 부터가 일을 시작하는 순간이라 생각 한다. 그때 많은 것을 배웠고, 회사에 취업해서도 원하는 위치에서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 한다. 

혹시나 취업 준비를 하면서 이 글을 읽게 되는 후배들이 있다면, 힘내라는 격려의 말 한 마디 전해주고 싶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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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Sto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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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4일 월요일

SW개발자의 군생활 - SW개발병(현 SW관리병) part 2

오랜만에 포스팅이다. 몇 주간 정신이 없었던 듯.. 번역도 하다 보니까 글 쓸 시간이 부족했다. 각설하고..

지난 포스트에 이어서 SW개발병으로써 참여했던 두 번째 프로젝트에 대해서 얘기 해 볼까나..

첫 번째 프로젝트는 Java 기반의 Standalone 시스템이라 하면, 두 번째 프로젝트는 전형적인 JAVA 기반의 웹 프로젝트 였다.

하루는 특전사령부에서 파견요청이 들어왔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위님과 함께 방문했다가 얼마동안 묻혀 살았던 듯..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이름하여 '낙하산 관리기록부'..

특전사령부에서 낙하산은 무척 중요한 물품이다. 높은 하늘에서 뛰어내릴때 뛰어내린 사람의 목숨을 지켜주는 건, 적절한 시기에 펼쳐지는 낙하산일 것이다. 무척 튼튼한 재질로 만들어진 낙하산은 오랜기간동안 사용할 수 있게 설계 되어져 있지만, 영원하지는 않다. 해서 생산년도와 몇 번이나 사용했는지, 수리를 한 이력이 있는지 없는지 등의 데이터가 낙하산을 관리하는데 주요한 척도가 된다. 내가 투입되기 전 까지는 모든 데이터가 '수기'로 작성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에는 실수가 있기 마련이고, 데이터 집계도 쉽지가 않다.. 해서 이런 실수로 인해 제 때 교체하지 않은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린 사람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중요한 시스템이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JSP 와 Oracle의 조합으로 아는 수준에서 만들려고 했었다. 그러다가 '프레임워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JSP로 코딩을 시작한 초보 개발자들은 한번쯤은 HTML태그와 Java코드가 지저분하게 섞여 있는 소스를 보다가 짜증을 낸 경험이 한번쯤은 다 있으리라 생각 한다. 그때 당시에는 지금처럼 Spring이 유행하지 않았었고, MVC패턴을 잘 적용할 수 있는 Struts가 살짝 붐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해서, Struts를 나름 공부하여 적용하기 시작 했다. URL끝에 .do 를 붙여서 매핑한 화면이 뜰 때 무척 신기 했던 기억이 난다. WAS는 머였드라.. 기억이 안난다.ㅋ

내가 관여 하지 않았지만 기억 나는 플젝중에 하나가 육군 홈페이다. 그 당시 '움직이는 그림' 혹은 '플래쉬'라는 것 자체가 무척 인상 깊은 요인으로 자리 잡았던 시절인데, 홈피 개편을 위해서 육군 전체 인력 중에 웹디자인 기술이 있는 인력을 육군 전산소로 파견을 보낸적이 있었다. 그때 2명이 착출되서 투입이 되었는데, 그들이 하는 디자인 관련 업무를 보면서 처음으로 그런 작업이 무척 어렵고 위대한지 깨달았다. 탱크의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서 사진을 오린다음에 투명화 작업화 하여 겹치게 표현하고,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로딩하게 하는 작업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친구는 유명한 모 대학의 디지털미디어 학과 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전역하고 개인 작품전이 있어 초대도 받고 그랬었다. 지금 잘 사나 모르겠네.. 이 친구가 위 낙하산 관리 프로그램 메인 페이지에서 낙하산 타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사진을 제공해줘서 플젝이 더 빛이 났었다..ㅋ

또 하나는 워게임이다. 그 당시 델파이였나.. 파워빌더였나.. 둘 중에 하나로 전쟁 전략 시물레이션 게임 같은 걸 만들어서 사용하곤 하였다. 직접 관여 하진 않았지만, 복잡한 알고리즘을 녹여서 전시의 상황을 시각화하여 표현하는 서버-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은 충분히 재미있는 아이템이였던 듯 싶다. 이 외에도 다양한 플젝이 3개 내무반을 꽉 채우는 SW개발병에 의해 개발/운영이 되었었다.

내가 속했던 육군전산소(현 정보체계관리단)는 독특한 야간근무를 수행했다. 바로 보안 관제, 전국의 육군망에 대한 트래픽을 모니터링하고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위치를 파악하여 차단하는 등의 역할을 하였다. 그 당시 해당 업무를 매일 하던 병사들은 Cert 병이였고, 야간 근무는 타 병사들이 돌아가면서 섰었다. 관제실에 전방에 있는 커다란 화면에서 전군의 트래픽이 실시간으로 로딩되고, 필터링에 의해 바이러스로 예측되는 녀석이 붉은 색으로 표기가 되면, 해당 부대에 바로 전화를 해서, IP 불러주고 네트워크 선이라도 뽑으라고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해당 사항은 근무일지에 수기로 적어서 보고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안 하겠지. 가끔, 업체 분들이 작업을 하기 위해 방문하여, 야간&새볔 내내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끔이다기 보다는.. 자주 있었다. 그럴 때 마다, 그 분들 쉬실 때 커피 한잔 마시면서 일에 대해서 조언도 얻고 그랬었다.

그 분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해 주었다. '절대로 이 바닥에 발을 들여 놓지 말아라~!' ㅡㅡㅋ 그 때 당시에는 왜 그런말을 했는 지 이해를 못 했지만, 그 당시.. 그리고 지금도 IT쪽 업이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 하기 때문에 했던 이야기들이 아니였을까.. 그래도 난 SI가 하고 싶었다. 힘들다고 하지만, 무슨 일이든 안 힘든일이 어디있을까.. 이왕 고생할거면 내가 하고 싶은 일, 그리고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렇게 지낸 2년동안의 SW개발병 생활은 나의 업을 선택하게 되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함께 작업했던 녀석들도, 이름 데면 알만한 업체들의 개발자로 고군부투 하고 있다. 조만간, 회포나 한번 풀어야 겠다.

이번 포스트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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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0일 일요일

[세미나 후기] 2014 SW 아키텍트 대회

지난 목요일(17) 오후에 2014 SW아키텍트대회에 참석한 세션 중 공유 할 만한 세션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때, 예전에 비해 규모 및 내용이 축소된 느낌이 있었으며, 북적 북적 거리는 느낌은 상대적으로 적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IoT, 빅데이터 관련된 내용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생각보다 클라우드 관련된 주제가 많았다는 점.. 그리고 플랜트 관련된 사례도 소개 될 만큼 중공업 분야에 대한 ICT 성숙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상세 세션 후기 보냅니다.

-      빅데이터 플랫폼 SW 아키텍처(김병곤, 클라우다인 대표)
n  전체 세션 중 유일하게 빅데이터 아키텍처 중심의 세션이였음.
n  너무 많은 오픈소스와 배포판별로 서로 다른 버전과 호환성 문제가 많음.
n  근래에 상용 빅데이터 SW(호트웍스, 클라우데라, 피보탈 등)등과 오픈소스 SW를 어떻게 조합할지 고민해야 함
n  플라밍고는 빅데이터 플랫폼을 제공하는 오픈소스 임.
n  복잡한 빅데이터 관리 및 시각화 등을 방화벽 밖에서 웹 혹은 이클립스 등에서 쉽게 하기 위해 시작된 오픈소스 (일반적으로 터미널 기반으로 작업을 함)
n  플라밍고 상세 사항
u  Apache 라이선스 2.0(서버) + GPL v3 (Web UI)
u  다수의 Hadoop 클러스터 지원
u  기 작성한 MapReduce 재사용 극대화를 위한 프레임워크 내장
u  워크플로우 구성을 위한 그래프 프레임워크 개발
u  Hadoop1/ Hadoop2 모니터링 및 MapReduce Job 추적
u  다양한 데이터 처리 플로우를 구성하는 워크 플로우 디자이너 및 다양한 데이터 처리/분석 프로그램 제공
u  HDFS 등의 파일 시스템 관리, Audit, 권한 관리
u  Hive Matastore 연계 및 데이터베이스/테이블 관리
u  Job 스케줄링 기능
n  특히, HDFS 내에 들어있는 데이터들을 윈도우 익스플로러와 같은 형태의 웹 상에서 조회가 가능하고, 핸들링이 가능한 것이 인상 적이였음.
n  사용자에 따라 권한 설정이 UI 상으로 가능하고, 사용자의 작업 내용이 로그로 남아 추적이 용이하며, Hive와 연계하여 테이블 생성 및 핸들링, 조회 등이 직관적으로 되어 있어, 우리가 구축하는 데이터 관리 시스템에 유용하게 써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음.
n  시각화 부분 검토시 검토 했으면 함. (오픈소스라 소스 핸들링까지 가능함)

-      사물인터넷을 위한 클라우드 서비스 구성과 개발(김영욱, 한국MS 개발자 및 플랫폼 사업본부 부장)
n  오전 세션이라 참석하지는 못 했지만, 발표자료의 흐름을 공유하고자 함.
n  전체 세션 중 IoT 관련 세션은 2, 하나는 MS에서 나머지 하나는 IBM에서.. 빅 벤더들이 IoT관련 플랫폼에 대한 세일즈가 이미 시작되었음.
n  IoT 기술로 인하여 수동적 IT 가 능동적 IT로 변하고 있다는 부분을 여러가지 사례로 설명
u  에스마폴리스(천식약 용도의 흡입기에 블루투스 내장), 구글 네스트(머신 러닝 온도 조절계 등)
n  IoT Platform = Device + Service + Software(Windows Embedded Device + Windows Azure/Bing + Windows SW/Visual Studio)
n  Software 작성 언어는 다양한 장치 및 웹 환경의 범용성을 지원하기 위한 언어로 선정 되어야 함 à JavaScript à Node.js
n  JavaScript 중에서도 Node.js 에 대한 소개 및 Azure 에서 PaaS 형태로 Node.js로 작성된 어플리케이션 탑재 및 프로비져닝 등의 강점을 소개 하였음
u  Node.js   JavaScript 기반의 서버(백엔드) 프로그래밍 언어 임.
u  VM은 크롬 웹브라우저에 이식되어 있는 JavaScript 엔진인 V8 이며, Standalone으로 JavaScript를 구동케 해줌
u  단일 쓰레드의 논 블로킹 비동기식 이벤트 기반 처리로 인해 적은 리소스로 높은 성능을 보여줌.
n  플랜트 운전 데이터 확보시, 플랜트에 설치되는 데이터 수집용 서버 혹은 본사쪽에 빅 데이터 스토리지에 저장 하기 전에 데이터를 수집하는 용도의 서버에 Node.js 가 하나의 좋은 방안이 될 것으로 생각 됨.

-      비즈니스가 꿈꾸는 아키텍처 vs 기술자들이 꿈구는 아키텍처 (신창섭, 투이컨설팅 이사)
n  아키텍처는 기술자 입장에서가 아니라 비즈니스 관점에서 정말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볼 필요가 있음.
n  한 사례로 무주 안성면 면사무소에는 주민들이 제일 원하던 목욕탕을 지하에 설치하여 운영 중 임
n  내부의 목소리 잘 듣기 라는 타이틀로 남동발전 사례의 장표가 3 장 나왔음.







n  위 사례는 우리가 매일 고민하고 있는 내용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개인적으로 놀랐음.
n  플랜트의 ICT 관련 Needs가 공식 석상에서 발표 될 만큼, 관련 분야의 ICT 활성도가 점점 높이지고 있다고 생각 됨.

n  남동발전에서는 이렇게 도출된 Needs를 어떤 식으로 빅데이터를 적용해서 끌어 나갈지, 컨설팅을 받고 있다고 함.